1. 지속된 트라우마. 그리고 나쁜 생각
- 결국 정신과를 가다.
개명된 명칭을 사용하자면 " 정신건강의학과"다.
나의 멘탈 상태는 최악이었다.
신체 건강했던 30대의 남성이 멘탈이 탈탈 털릴 이유가 뭘까?
- 여기서 말하는 신체건강은 "의학적"으로 증명이 된 경우이다.
2020년 7월에 담배를 끊었고, 이후 건강검진에서도 그 어떤 질병도 발견되지 않았다.
나에게는 축복이자, 큰 행운이였다.
2021년 그 유행병 전 국민을 휩쓸었을 때에도,
그리고 2022년 나의 소중했던 멘토, 외삼촌께서 소천하셨을 때에도,
나의 멘탈은 강인했다.
나는 흘려보내는 법을 알았다.
2. 내 인생의 전환점, 2023년
너무나 힘들고 어려웠던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잘 이겨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혼자서 이겨내기 너무나 힘들었다.
함께 이겨내야 할 사람도 힘들어했고,
우리는 각자의 회복 시간에 전념하기로 했다.
나의 아내는 아내대로의 치료방법을 강구했고,
나는 나의 생각대로 치료하기로 했다.
우리가 겪은 층간 소음은 단순히 발망치 층간소음이 아니었다.
엄청난 괴성과 욕설, 그리고 망치소리...
가해자의 뻔뻔한 태도.
그리고 이유 없는 적대심.
이 모든 것이 우리를 힘들게 했다.
처음에는 단발성으로 끝낼 거라 생각하고 이해하려 했다.
하지만, 단발성이 아니었다.
가해자는 2023년 7월부터 2024년 5월 말까지 우릴 괴롭혔다.
그리고 우리는 가해자를 2024년 1월에 고소를 했고,
층간보복소음 가해자는 2024년 3월 말쯤
드디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되었다.
이 과정까지 오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
건강에서도 이상이 왔고,
누적된 스트레스로 인해 나의 정신적 피로도는 극에 달했다.
그래서 정신과를 찾았다.
3. 처음 방문한 정신건강의학과, 나한텐 그냥 정신과.
위에서 기술한 것처럼
나는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축복을 받았다.
많이 아파본 적도 없었으며, 크게 힘들었던 적도 없었다.
심지어 남들이 많이 힘들어했던 군에서도
오히려 괜찮았었다.
아빠의 갈굼에 내공이 쌓였던가? 싶기도 했고,
남자형제들의 갈굼, 그리고 여동생의 생떼 등등....
군에서 멘탈적으로 힘든 일이 있었어도 괜찮았고,
힘든 일이 있었도 해결해 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해결할 수가 없었다.
그 이유는
"내가 그 가해자를 너무나 죽이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 일을 해결하고자,
대화를 시도해 봤지만 거절당했고,
공권력을 사용해 봤지만, 공권력도 소용이 없었다.
가해자가 조용해진 건
민사소송의 소장이 송달되었을 때다.
허탈했다.
너무나 허탈했다. 너무 쉬웠다.
이렇게 조용해질 수 있었다니.
우리가 고소했을 때 항의 표시로
매일 쿵쿵거리며 걸었던
걸음걸이마저도 조용히 걸었다.
때려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간절했다.
목을 비틀어 버리고 싶었고,
죽어가는 숨소리를 듣고 싶을 정도로
나 스스로가 잔인해져 가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어느 날
가해자가 또다시 고소에 대한 항의 표시로
쿵쿵거리면서 걸었던 그날.
나도 모르게..
"죽일까?"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이 말을 기억하지 못한다.
나의 아내는 그 이야기를 듣고,
나에게 병원을 권유했다.
그리고 나는 그날 저녁 정신과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터미널 앞의 작은 정신과"
그곳의 블로그 리뷰를 보았고,
심사숙고하여 선택했고, 기대를 했다.
나는 그곳에서 도움을 받아서
나의 이 잔인한 생각의 지옥에서 탈출하길 바랐다.
하지만... 그곳은 나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곳이였다.
그곳에서 친절했던 것은 데스크에 근무하는 간호사 두 명이었고,
그곳의 의사는 내 생각과는 달랐다.
유튜브에서 보던 이야기를 들어주던 다정다감했던
정신의학과 선생님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냉철한 이성으로 원인을 분석하여
한 번에 나의 병명을 맞췄던 그런 의사도 아니었고,
그가 나에게 처방한 것은 "숫자가 적힌 노란색 약"이었다.
그의 병원입구에는 너무나 자랑스럽게
멋진 문구가 적혀있었고, 여러 경력들이 자랑스럽게 나열되어 있었다.
내가 아는 곳의 정신과와는 달랐기에 당황했지만,
나는 그렇게 진료를 받고 나왔다.
4. 도움을 요청하다.
그렇게 정신과를 나오고
미국에 있는 누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거의 4년 만에 연락하는 누나인데
첫 도움 요청이 병원에 대해 물어보는 것이라니.ㅋ
한심했다. 하지만 간절했기에.
친구 핑계를 대면서 정신과에 대해서 물어봤다.
(누나는 미국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를 하고 있다.)
미국과 한국의 진료방식에 대한 차이를 잘 모른다고 했다.
다만, 나보고 그 친구에게 의사를 신뢰하고
그 의사에게 모든 속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그렇다면 의사는 친구가 원하는 처방을 내릴 것이고,
그렇게 신뢰를 쌓아가는 것이라면서 위로해 줬다.
시간이 갈수록 돈이 들 거라고 했지만,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거라고 말했다.
그 말을 믿고, 나는 기다렸다.
그리고 한 달 뒤
나는 다시 그 병원을 찾아가게 되었다.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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